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주 계림로 보검 (문단 편집) == 특징 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황금보검.jpg|width=200%]]}}} || 복원한 모습을 가정한 복제품. 칼집과 손잡이 부위는 목재고, 칼날은 평범한 [[단검]](短劍) 날 형태이다. [[삼국시대]]의 흔한 [[환두대도]]와 그 형태와 문양이 판이하게 다른데, [[한반도]]나 [[동아시아]]가 아닌 [[서역]]에서 제작한 검이 확실해서 주목을 받았다. 검을 장식한 보석은 [[동유럽]] 원산 [[석류석]]이고, [[트리스켈리온|소용돌이 문양]] 또한 [[불가리아]]에서 출토된 [[트라키아]] 시대 유물과 흡사했다. [[일본]]의 고대 유리(琉璃) 전문가 요시미즈 쓰네오(由水常雄, 1936~)는 계림로의 황금보검을 제작한 금 세공 기술자는 [[고대 로마|로마]] 문화에 정통한 사람이고, 주문자는 [[켈트족]] 출신 트라키아 왕이라고 보았다. 함께 출토된 [[사자]] 머리 버클은 기원전 4세기부터 서기 5세기까지 [[동로마 제국]]에서 쓰이던 형식이라는 것이다. 이 버클은 원래 황금보검을 차기 위해 [[허리띠]]에 달았으리라 추정한다.[[http://www.chosun.com/site/data/html_dir/2009/10/23/2009102301165.html|링크]]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Jail-Jewel-sword_2.jpg]]}}} || [[카자흐스탄]] 보로보에(Burabay) 지역에서 비슷하게 생긴 단검의 일부가 발견되어 현재 [[러시아]] [[에르미타주 박물관]]에 소장 중이고, [[중국]] [[신장 위구르 자치구]]의 [[쿠처시|쿠처]]에 있는 키질 석굴 제69굴 입구 천장의 [[벽화]]에도 디자인이 거의 비슷한 단검이 그려져 있다. 이 두 지역은 보검이 제작되었다고 추정하는 동유럽권과 신라의 중간, [[실크로드]] 선상에 있기 때문에 보검의 유입 경로를 한층 입증하였다. 그래서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이 물건이 [[중앙아시아]]의 [[유목민]] 문화와 관련 있지 않느냐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. 다만 이는 신라를 [[흉노족 신라왕족설|유목민 문화와 연관 짓는 것]]이 아니라, 유물 제작 지역이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문화권과 연관되었다고 보는 것이다. 학술적으로도 유목민 문화와 [[한민족]] 문화 간 상관관계보다는 당대 육상, 해상 실크로드에 초점을 맞추어 신라 또한 실크로드 교역로에 포함되었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증거로 여긴다. [[대릉원]] [[황남대총]] 남분과 북분 및 [[신라왕릉]]에서 출토된 [[유리]]로 제작된 [[대한민국의 국보|국보]] 제193호 [[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|유리봉수병(琉璃鳳首甁)]], 보물 제624호 [[황남대총 북분 유리잔]] 등과 함께 신라가 삼국통일 이전부터 일찍이 [[실크로드]] 혹은 [[아라비아]] 상인들의 바닷길을 통해 머나먼 서역과도 주기적으로 교역하였음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. 시기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6세기 이후부터 [[괘릉]]이나 [[흥덕왕릉]] 등에 있는 [[경주 원성왕릉 석상 및 석주 일괄|호인상들]], 이란에 전해지는 [[쿠시나메]] 전설 등은 서역과 신라 간 접촉이 짧게 단편적으로 이루어졌다거나 단순히 유물만 왔다갔다하는 수준이 아님을 방증하기도 한다. 만약 이 보물이 서양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확정된다면 현재 대한민국이 지정한 보물 중에서는 904호 [[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]][* [[손기정]] 옹이 [[1936년 베를린 올림픽]] [[마라톤]] 경기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받은 부상이다.] 이래 두 번째로 서양에서 제작한 보물이 될 것이며, 외국에서 제작한 보물로서는 4번째가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